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문단 편집) === 기타 ===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은 여러차례 인터뷰를 통해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0/04/30/201004300500007/201004300500007_1.html|"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면서 오히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58|"화폐개혁이 북 경제발전을 촉진했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평양의 모습'''만 보았고, 사업의 안전상 '''북한 당국의 입맛에 맞춰 말할 수밖에 없으므로''' 걸러 들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양과 다른 지역(특히 국경지역 등)은 상황이 완전 다르기 때문으로 실제 북에서 상위 5%의 특권층이 거주하는 평양과 여타 지방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쩌면 그 역시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며 하지만 대북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만약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하였다가 북한으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당할 지 알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북한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 조치를 단순한 시장탄압조치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며 베트남에서 개혁개방 초기 나타났던 화폐개혁과 비슷한 목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인플레이션의 해소와 정부 재정의 확충은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폐개혁 직후인 2009년 12월에 북한이 잇달아 부동산관리법, 물자소비기준법, 종합설비수입법 등 경제관련법령의 확충과 정비에 나선 것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베트남의 화폐개혁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였다. 베트남은 도이머이 정책 발표 직전인 1985년 가격과 임금 및 통화개혁을 실시하였으며 당초 개혁파가 추진하고자 했던 것은 [[배급]]제 폐지와 가격체계 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가격 및 임금개혁이지 통화개혁이 아니었다. 1980년대 체제 내에서의 개혁운동인 신경제정책으로 농산물 등의 생산량은 증가하였지만 배급제는 계속 유지되면서 정부는 계속해서 막대한 수매보조비를 지출해야 하였으며 시장은 시장대로 정부의 강제수매로 인해 물량이 부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중고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쌀의 정부공급가와 시장가격은 10배 수준이면서 이 차이는 1989년에 정부공급가를 폐지하고 시장가격으로 단일화하면서 비로소 해소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10:1의 화폐개혁이 더해진 것은 주로 보수파가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노동자 등 급여생활자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한 조치였으며 그 결과 시행 후 수개월 동안은 절하된 화폐가치로 급여생활자들의 생활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반대로 정부수매가조차 10:1로 낮아지면서 생산자들은 정부 수매를 거부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결국 바로 다음해인 1986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600%'''를 찍으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렸으며 전면 개혁 및 개방을 반대하던 보수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개혁파를 견제하기 위해 취한 통화개혁으로 인해 당내에서 주도권을 잃고 도이머이(개혁개방정책)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화폐교환은 대대적인 화폐가치절하를 골자로 한다는데서 당연히 베트남의 화폐개혁과 궤를 같이 하였으며 그런데 위에서 밝혔듯이 그나마 농업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베트남에서조차 생산자들이 정부수매를 거부하면서 화폐개혁 직후의 베트남은 극심한 재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하였다. 공산품은 물론 주식작물까지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북한에서, 아무리 민간자금을 ~~강탈~~흡수했다고 해도 국가가 이 모든 소비재를 적시에 공급해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은 ~~정신머리 제대로 간수하고 있다면~~ 실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거창한 목표였다. 그러하다고 대대적인 가격개혁을 실시한 것도 아니었으며 일단 '''베트남이 경제개혁의 선행조치로 화폐개혁을 했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 이런 오류가 나타난 원인은 해당 전문가들이 경제적인 면을 자세하게 파악하기 힘든 정치학자들에게 해석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당장 한국 북한학계의 인적 구성부터가 정치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경제학, 사회학자들이 태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어느 학교 북한학과는 아예 교수 네 명이 죄다 정치학자였다.~~] [[장성택]]이 숙청된 후 재판 판결문에서 다시 언급되었으며 원문은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해당 내용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북한에서도 화폐개혁을 "엄청난 경제적 혼란", 그러니까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담이지만 저 말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자면 '''김정일이 싼 똥을 장성택의 입으로 청소한다'''에 불과하면서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북한에서 선전하는 내용은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절대 안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